용원정 거창 마리면 문화,유적

늦여름의 오후, 거창 마리면의 용원정을 찾았습니다. 비가 갠 뒤라 공기가 유난히 맑았고, 들판에는 습기를 머금은 풀 냄새가 은은히 퍼져 있었습니다. 강가를 따라 이어진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낮은 언덕 위로 기와지붕이 살짝 드러났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단정한 담장과 함께 ‘용원정(龍源亭)’이라 새겨진 현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은 고요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용원정은 조선시대 거창의 대표적인 정자 중 하나로, 학문과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쉼터이자 사색의 공간으로 전해집니다. 강을 향해 서 있는 정자의 모습은 마치 물결과 대화를 나누는 듯, 자연 속에 스며든 단아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1. 마리면 들길을 따라 도착한 길

 

용원정은 거창읍 중심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 마리면 양덕리 마을 인근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용원정’으로 검색하면 정확히 안내되며, 마리면사무소를 지나 마을길을 따라가면 정자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주차장은 정자 아래쪽 공터에 마련되어 있고, 주차 후 짧은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정자에 닿습니다. 길가에는 감나무와 대나무가 번갈아 서 있고, 그 사이로 강물의 반짝임이 비쳤습니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이 서로 부딪히며 부드러운 소리를 냈고, 흙길은 비가 그친 뒤라 촉촉했습니다. 걸음을 옮길수록 정자의 지붕이 점점 선명해지고, 강물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도착하기 전부터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길이었습니다.

 

 

2. 물가 위의 정자, 균형 잡힌 구조

 

용원정은 강변의 바위 위에 세워진 팔각 정자 형태로, 물과 맞닿은 위치에 있어 시원한 개방감을 줍니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다져져 있고, 목재 기둥은 세월의 빛을 머금은 듯 은은한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정자의 난간은 낮고 간결하며, 지붕의 곡선은 부드럽고 유려했습니다. 마루에 오르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시원했고, 발아래로는 물결이 잔잔히 흘렀습니다. 마루 한편에는 ‘용원정기(龍源亭記)’라 새겨진 목판이 걸려 있었고, 글씨의 힘이 살아 있었습니다. 천장의 서까래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며 나무결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정자 전체가 햇살과 바람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단정함 속에서도 유연한 조형미가 느껴지는 구조였습니다.

 

 

3. 용원정의 역사와 유래

 

용원정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선비였던 김도화(金道華)가 후학을 양성하고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세운 정자입니다. 이름 ‘용원(龍源)’은 마리천의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듯 흘러간다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자는 18세기 후반에 건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김도화 선생의 학문적 배경과 더불어 이 정자가 지역 유생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선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잘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정자 안에는 ‘풍월을 즐기며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의 편액이 걸려 있었고, 그 문구가 이 공간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4.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풍경

 

정자 앞에는 마리천이 잔잔히 흐르고, 강 건너편에는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습니다. 물 위로 비친 정자의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두 개의 정자가 서로 마주 보는 듯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잔잔히 일렁이고, 나무 그늘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여름에는 연둣빛 초목이 정자를 감싸고, 가을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며 기와의 색과 어우러집니다. 겨울에는 강물 위로 안개가 피어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합니다. 정자 옆에는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면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동시에 들렸습니다. 자연이 꾸민 무대 위에 정자가 조용히 놓여 있는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볼 명소

 

용원정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거창 수승대’를 방문했습니다. 푸른 계곡과 절벽이 어우러진 곳으로,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합니다. 이후 ‘거창 덕천서원’을 찾아 조선 유학의 흔적을 살펴보고, 점심은 마리면의 ‘들밥정식당’에서 산채정식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거창박물관’에 들러 지역 유물 전시를 관람했고, 해 질 무렵 다시 용원정으로 돌아와 석양이 강물에 비치는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햇살이 정자 기둥 사이로 스며들며 수면에 길게 드리워졌고, 하루의 여운이 고요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정자와 강, 그리고 자연이 이어지는 일정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6. 방문 시 알아두면 좋은 점

 

용원정은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정자까지는 짧은 흙길을 걸어야 하므로 편한 신발이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강가에 벌레가 많으니 긴 옷차림을 추천하고, 겨울에는 강바람이 세니 외투가 필요합니다. 비가 온 뒤에는 바위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전 10시 전후에는 햇빛이 정자 안으로 들어와 사진 촬영에 가장 적합하며, 해 질 무렵에는 강물 위로 석양이 반사되어 아름다운 빛을 보여줍니다. 음식물 반입과 흡연은 금지되어 있고, 정자 내부는 신발을 벗고 조용히 이용해야 합니다. 물가에 가까운 위치라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경우 안전에 유의해야 합니다.

 

 

마무리

 

용원정은 크지 않지만,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정자였습니다. 강물 위로 드리운 기와의 곡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햇살이 나무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순간들이 어우러져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건축이지만, 자연 속에 녹아 있는 그 조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마루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지고, 바람과 물소리가 작은 명상처럼 들렸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세월이 만든 품격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봄에 찾아, 강가에 새순이 돋고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 속의 용원정을 보고 싶습니다. 이곳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거창의 풍류와 선비 정신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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